회고 뭐, 별거 있나요
까마득한 걸 보면 꽤나 오래전인 것 같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Goodbye 어쩌구, Hello 어쩌구 그런 문장을 적었던 게 시작이었으려나? 간단했던 문장이 넘버링한 여러 줄이 되고, 블로그 정착 후 줄글이 되었다. 어쩌다 생긴 연말 루틴으로 12월만 되면 가슴 한켠에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나 적어서 얻는 이점을 포기할 수 없기에 올해도 포기하지 않고 달그락 달그락 갈무리를 준비해 본다.
작년 회고 살펴보기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최우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해의 첫 곡으로 비투비의 Dreamer 를 선정했다.
이 곡을 선정한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사그라든 열정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3으로 시작하는 나이는 처음이니 태초마을로 돌아가 다양한 시각으로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즐기고 싶었다. 결과보다 경험에 조금 더 집중하는 그런 것.
앞이 보이지 않고 세상이 휘청거려도
힘차게 we need to be stronger oh baby
뜻대로 되지가 않고 자꾸 어긋난대도
흘러가는 시간을 타고Do what you wanna do
다 마음대로 해 네 마음대로 (다 마음대로 해 어때)
하고 싶은 대로 해 좋은 날에 (하고 싶은 대로 okay)
우린 아직도 꿈을 꾸고 가슴이 뜨겁게 뛰는 걸
I mean feel your heartbeat oh my baby
Do what you wanna do지금 시작해도 절대 안 늦었어 it’s not too late (it’s never too late)
누가 뭐라 해도 do what you wanna do it’s ok (everything gonna be ok)
매년 느끼는 거지만 새해 첫 곡의 의미는 참 대단하다. 매일 그 곡을 듣고 사는 것도 아니고, 가끔 생각날 때 듣는 정도인데 지나고 나면 어쩜 이렇게 한해가 가사처럼 지나가는 건지 알 수 없다. 끼워 맞추기도 10년이면 인정해 줘야 한다고! 그러니까 올해도 가사처럼 지나갔다는 뜻이다. 책임감과 부담을 조금 내려두고 순간에 집중하는, 때로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무가내의 멘탈로 잘 버텼다 는 뜻이지.
물보라를 일으켜 🌊
내 감정이나 생각이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을 때 글을 쓴다. 심장이 콱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노션과 페이스북 비공개 피드에 내 조각들이 남아 있다. 회고 작성 전 이 기록들을 하나씩 살펴보곤 하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다이내믹 그 잡채. 하고 싶은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을 때의 스트레스 기록,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관한 기록, 원인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감정 기복의 소용돌이 등 올해도 꽤 많은 성장을 해낸 것 같다.
내 감정이 가장 격정적이었던 순간, 범람하는 천을 보며 마음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나 보다.
너울치는 지금을 통제하지 않으려 해. 차라리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하는 쪽을 택할래. 그럼 자연스럽게 정리되겠지. 그게 감정이든, 생각이든, 일이든, 사람이든.
그리고 지금, 날 이렇게 만든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아 자연스럽게 정리된 게 맞는 듯하다.
역대급 소비
올해를 소비의 해로 정의해도 과언이 아니다.
- (10년 넘게 고민하다 지른) 카메라 두 대(R10, g7x mark iii)
- 인스탁스 미니 필름 (300장은 사지 않았을까?)
- 보테가베네타 백
- 가족 선물
특히 카메라는 사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살걸 약간의 후회감이 들기도 하고, 나한테는 똑딱이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제주도 여행에 R10과 함께 갔다가 힘들어서 사진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바디 손떨방이 없어 열심히 찍은 영상들이 멀미 유발 영상이 되어 버린 게 가장 아쉽다. (그래서 또 지른 g7x mark iii…) 일상을 담는 정도라면 하이브리드 카메라가 딱이다. 굳이 렌즈 교환식 그런 거 필요없어! 무거워! 찍고 싶은 순간에 내 손에 있는 카메라가 최고의 카메라임!
대학생 때 무슨 경진대회 상품으로 받은 인스탁스 미니90! 오래전 혼자 홍콩 여행했을 때 유용하게 쓴 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배터리도 방전돼서 새로 구매한 건 안 비밀. 특별한 순간 단 한 장의 사진이라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라 여행 갈 때마다 챙기게 된다.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뚝딱이던 표정과 포즈가 ‘조금은’ 개선되어 뿌듯하다.
연말정산 결과 보고 기겁했지만 덕분에 환급도 받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떠나요 ✈ 집을
정리하고 보니 거의 두 달에 한 번은 떠난 꼴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 강릉 벚꽃 여행
- 속초 여행
- 4박 5일 자동차 여행(남쪽)
- 제주도 여행 2회
- 서유럽 3국 패키지 여행(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럽이다. 유로 가장 비쌀 때 간 게 조금 속이 쓰리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패키지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깨달았던 여행.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너무 더웠고, 스위스 풍경은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았고, 프랑스는 무언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이 여행을 기점으로 영어 회화를 향한 열정(?)[1]이 솟구치고[2] 있다. 23년엔 휴양지에 가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있겠지?
떠나요 ✈ 매시업을
12기를 마지막으로 매시업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정말 마지막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다. 후련함과 미련이 뒤엉킨 마음이지만 다방면으로 고민되는 것들을 두고 내 욕심 하나로 가져가는 건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매시업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부터 12기가 끝난 그 순간까지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도, 힘든 일도, 소중한 추억도 참 많았다 싶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좋은 사람들과 더 끈끈한 인연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우연한 계기로 본 지원서의 내 다짐과 지난 2년의 내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는 거다.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채우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아이디어도 내고, 조율도 해 보고, 여러 사람들과 잘 섞여도 보았던 그 시간들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 같다.
매시업이 없더라도 다양함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한다.
떠나요 ✈ 회사를
올해의 가장 큰 변화. 약 5년을 몸담은 회사와 작별했다. 큰 꿈은 없었지만 희망을 갖고 입사했던, 나름의 애정을 가진 회사를 떠나며 다양한 기억과 추억이 떠오른다.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며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건 차곡차곡 쌓은 인간관계와 늘 함께했던 업무를 두고 간다는 점이었다.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동료분들 모두 각자의 프로젝트와 긴 시간을 함께했기에 업무 하기가 수월했다. 다만, 회사의 행보에 희망이 생기지 않았다.
여러 문제가 있었다. 어용 노조를 포함하여 차마 글로 적을 수 없는, 직접 겪어야 알 수 있는 것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직 안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척박한 상황에서도 성공해내는 멋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한순간의 불만으로 퇴사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입사할 때부터 갖고 있던 의문이 3년 차 때 극에 달했고, 행동을 통한 결과를 얻어낸 게 올해였을 뿐. 바뀔 거라 믿고 버틴 게 벌써 몇 년이다.
이 회사를 나갈 경우 나의 득실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얻는 것, 잃는 것, 그리고 기대되는 것. 잃는 것도 잃기엔 아까운, 상당히 가치있는 것들이었지만 얻는 것과 기대되는 것의 가치에 더 끌렸다. 그리고 그 가치는, 나의 성장이다. 이 또한 5년을 일하며 나름의 성장을 해왔기에 선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바깥 세상이 궁금했다.
온실 속 화초에서 정글로 걸어가는 건 마냥 설레는 일은 아니다. 앞으로 이전보다 더한 고난과 역경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만 궁금한 걸 어떡해? 정글로 간다고 해서 날 잡아먹을 육식 동물만 있진 않겠지. 어디서든 내 몫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새 회사 적응기
적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 중이다. 분위기, 업무, 근무 체계, 업무 방식 등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정적인 환경에서 동적인 환경으로 바뀐 터라 포지셔닝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사실 이 고민은 둘째고, 진짜 고민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데 뭔가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매일같이 멘탈 붕괴와 재건이 반복된다. '누군가에겐 나도 대단할 때가 있겠지, 나도 유독 잘하는 부분이 있겠지’라고 되뇌여도 자꾸 무너지는 걸 어떡하니~
처음 겪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른 순간이 있었다. 세상 사람 다 똑똑한데 나만 바보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던 그 해에 나는 큰 성장을 이뤘다. 지금 이 버거움도 성장통의 일종이리라. 현명하게 잘 견뎌내겠다고 다짐해 본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 뿐.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일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너무 좋다. 잘 챙겨 주시고, 다정하고, 따뜻하다. 결국 이 스트레스는 모두 나에게서 기인한 것이란 의미이겠지? 몸으로 올 스트레스를 잘 털어내야겠다.
문화 생활과 취미
문화 생활 한 거라곤 넷플릭스 보기, 음악 듣기, 두 번의 사진전, 싸이 흠뻑쇼, 사운드베리페스타, 그리고 한 편의 뮤지컬[3]이 전부이다…라고 적으려고 했는데 열거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즐겼네? 그래도 문화보단 여행에 조금 더 집중했던 거로.
사운드베리페스타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양일권으로 갔는데 이튿날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었다. 갑자기 태풍이요? 그래도 포기 안 하고 양일 다 간 내가 위너다. HYNN(박혜원)의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너무 잘해서 듣는 내내 정신이 혼미했다. 특히 ‘막차’ 라이브 때 처음 들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눈물 줄줄 흘렸던 건 비밀. 이직이 되냐 마냐, 하는 게 맞냐 아니냐 등을 두고 고민하던 때라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10cm 보고 덕통사고(원래 좋아하긴 했지만) 당해서 몇 주 내내 10cm 노래만 들었고, 소란의 무대 매너 끝내줬고, 상큼한 최예나, 음색이 좋았던 조유리, 낯가리던 이석훈, 목 상태가 아쉬웠던 볼빨간 사춘기, 늘 안정적인 잔나비,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나는 박재정 등 정말 많은 무대가 날 행복하게 했다. 윤하 언니… 비가 너무 와서 못 봤는데… 갈 걸 그랬어…
그리고 몇 년을 놓지 못하는 취미, 노래. 조금씩 흩어진 퍼즐을 하나씩 끌어다 맞추는 중이다. 퍼즐이 있다는 게 어디며, 이만큼 나아진 게 어디야. 갈 길이 멀지만 존버는 승리하니까! 하다 보면 또 늘겠지.
책을 거의 안 읽은 건 반성해야 한다. 미디어 시청 시간을 좀 줄이는 게 좋겠다.
회고를 맺으며
12월 중순부터 회고를 위해 달렸지만 올해도 밀렸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다짐. 올해의 끝에서 작년의 다짐을 얼마나 지켜내었는지 확인해 보아야겠지?
작년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건강하고, 기초를 탄탄히 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욕심 대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과 행복을 누리는 한해가 되길.
여유를 갖고 다방면의 경험을 쌓는 해였고, 퇴라피로 건강을 ‘잠깐’ 되찾았으며, 기초를 탄탄히 하고자 했으나 빈 곳을 모두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점수를 따지면 70점? 위의 문장을 적으며 '2022년에는 이직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일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우당탕탕 정신없는 한해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저떻게 잘 보낸 듯하다. (회고도 12월 중순부터 미리 쓰기 시작한 거 칭찬해!)
올해는 나를 다져가는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가계부도 다시 쓰고, 투자 포트폴리오도 정리하고, 보험도 들고(어린이 보험 막차 타기), 영어 공부, 개발 공부(안드로이드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건강 챙기기가 있다. 영어는 작년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올해는 꼭 꾸준히 해 봐야지! 많은 경험과 사람을 만나는 것에 집중했던 작년이라면 올해는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가꿀지 정리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마음을 담아 친구들과 함께 들은 올해의 첫 곡은
김동률의 '출발’ 이다.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 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 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촉촉한 땅바닥 앞서간 발자국
처음 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 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 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 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처음 마주할 것들이 많으리라 예상되는 2023도 지지 않으며, 또 가끔 지며 다채롭게 채워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