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첫 곡이 먼저냐, 예언이 먼저냐의 고민이랄까. 물론 둘 다 정답임을 안다. 새해 첫 곡을 선정해 들은 지 어언 10년이 넘었는데 반년도 안 되어 그 의미를 깨달은 해는 처음이다.
처음 마주할 것들이 많으리라 예상되는 2023도 지지 않으며, 또 가끔 지며 다채롭게 채워 봐야지!
이 문장을 적을 땐 몰랐죠… 지금도 모르고 싶어요…
22년 11월, 정든 첫 회사를 떠나며 새로운 회사에서의 새출발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선정한 김동률의 시작은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 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중략)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또 다른 시작을 선물했다.
빙글빙글 돌아간 상반기
상황이 애매모호하게 돌아가고 있단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기에 그저 주어진 것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제공하던 SDK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논의도 하고, 먼슬리 회고도 하고, 샘플 코드도 만들고, 디자인 모듈도 만들면서 나름 알찬 시간을 보냈다. 음, 그러니까 본질은, 그 누구도 우리에게 일을 주지 않았지만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단 뜻이다. 스터디를 통해 플러터[1]입문도 하고, 이런 것들이 쌓여 함께하던 분들과 단시간에 친밀감[2]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있었는데…
그래도 분명 회사가 있었는데요, 있었거든요? 전 회사의 10% 규모래도 작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없어, 아니 없어지는 중이네요.
온실 속 화초에서 정글로 걸어가는 건 마냥 설레는 일은 아니다. 앞으로 이전보다 더한 고난과 역경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만 궁금한 걸 어떡해? 정글로 간다고 해서 날 잡아먹을 육식 동물만 있진 않겠지.
‘이만하면 웬만한 일 다 겪었다!’ 싶을 때 '힝, 속았지?'의 사건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이번 일도 그 연장선이지, 뭐. "진짜 망할 수도 있을 듯요. 와하하!"라고 말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스쳐 가는 게 어쩌면 알면서 선택한 것 같기도.
그래서 후회하느냐? 아니. 낮은 확률이라 생각했을 뿐이지 고려하지 않은 상황은 아니다. 내 맷집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회사가 망한 건 처음이지만 뒤숭숭하고 소문 많은 분위기는 이미 신입사원 때 다~ 겪어낸 일이지 않겠습니까. 회사만 안 망했을 뿐이지 우리 팀이 폭파될 수 있단 걱정을 연말마다 해야 했던 n년차 직장인 짬바는 어디 안 가지롱.
그 상황[3]에서 내가 뭘 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공부가 손에 안 잡히는 거? 그것도 어쩔 수 없지. 불확실한 상황 속 단 하나의 확실함이 있다면 이 순간을 그리워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미래의 난 ‘결국’ 일하고 있을 테니까. 그게 언젠지, 어딜지 모른다는 점만 빼면 월급도 나오지, 재택 중인데 일은 없지, 시간은 넘치지? 꿈꾸던 삶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니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다. 지금을 즐기자.
쉼표 찍기
많은 경험과 사람을 만나는 것에 집중했던 작년이라면 올해는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가꿀지 정리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작년 회고에 적은 다짐이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내 세상[4]에서 한 발짝 떨어지기로 했다. 차박에 진심…까진 아니더라도 빈도가 가장 잦았던 해. 별게 별것이 아니게 될 때까지 낯선 곳을 찾아 머리를 비웠다. 그때 본 일몰과 윤슬, 돌멩이가 부딪히던 소리, 누군가 즐기던 불꽃이 선하다.
물론 차박만 다닌 건 아니다. 미친 듯 더웠던 전주, 할머니, 엄마와 함께 다녀온 무의도, 수다가 목적이었던 일산, 그리고 고요함이 마음에 든 진해[5]도 있었다.
이게 되네?
구직자 포지션이 입사 예정자로 바뀌던 순간, 이대로 입사할 순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입사 전 해외 한번 찍어야지! 2박 3일 만에 방콕행 티켓을 끊고 숙소까지 예약하다니! 😨 비행기 타는 날 한숨도 못 자고 간 건 함정이지만 단기간에 몰입해서 해냈다는 것 자체로 뿌듯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홀로 떠난 여행이라 그냥 많이 걷고, 구경하고, 쉰 게 전부였지만 아직까지도 조막만한 미니 파인애플의 맛이 혀끝에 맴돈다. 물론 1일 1마사지도 잊을 수 없음!
이 여행으로 체력도 지갑도 탈탈 털렸지만 후회는 없다. 그 둘은 채울 수 있지만 요 시간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으니.
또 다른 시작
8월부터 새 회사에 출근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당탕탕 적응기 시즌 2! 는 작년의 시작과 참 닮아 있었다. 성격 좋은 능력자들이라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달까. 그런 마음과 생각이 부담이 되어 또 자신감이 맨틀을 뚫고 들어갈락 말락 할 때 누군가 내 상태를 알아챘다. 내 오랜 숙제인 자신감 부족[6]이 정통으로 꿰뚫린 일은 처음이었다.
그러게. 틀리면 고치면 되고, 잘못한 건 개선하면 되는데 난 무엇 때문에 부담에 짓눌려 살았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n년의 커리어를 진지하게 돌아봤다. 그 끝에 욕심이 있었다. 사람이니까 흠이 있을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발목을 잡았던 거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난 부족하지만 잘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다. 과정에선 실수가 있을 수도,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되돌리면 그만이다. ‘고작’ 그거 하나 잘못했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다. 이 생각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적는 지금, 어쩌면 이런 내 모습을 알아본 사람이 또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고마웠습니다.
덕후는 멈추지 않아!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이 딱이다. 23년 1월 1일을 비투비 콘서트로 시작했으며, 10월 13일부터 15일은 임현식 콘서트로 불태웠다. 3일 올콘은 고민되는 일이었지만 (구)동방신기 덕질 중 깨달음이 있었으니, '떡밥은 줄 때 먹어야 한다!'는 거다. 3일 올콘에 올 스탠딩? 까짓거 별거 아니네!
작년 여름에 나올 것 같던 앨범이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고 기다려 봐야지. DIVE INTO YOU, 콘서트 이름에 딱 맞는 공연이었다. 축축함도, 산뜻함도, 고독함도, 찬란함도 느껴지는 바다와 함께한 기분이랄까. 그 시간을 다시 곱씹으니 새삼 행복해지는 게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누구에게나 공개할 수 있는 그런 것 말고, 조용히 오래 즐기는 인문학적(?)인 덕질도 하나 있다. 올해는 요 부분에서 성장을 체감한 의미 있는 해였다. 코로나 이후로 늘 교류하던 사람들과만 교류했었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느끼고 배운 점이 많다. 가장 의미 있던 건 다음 레벨로의 점프를 위해 나름의 계산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진 못 했던 건데! 존버는 승리한다고!
이제서야 조금 이해하는 것
“여기 일은 솔직히… 쉬워요.”
“늘 쉽다고 할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쉬워요.”
늘 어렵진 않아도 꽤 어렵다고 생각하던 우물 안 개구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 개발 경력 차이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속마음을 허투루 말하는 분이 아님을 알기에 더 그랬다.
그곳을 떠난 지 1년 남짓.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책임 없이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조금 잘못돼도 내 밥그릇이 엎어질 경우가 드물다는 것, 업무를 뺏기더라도 그뿐이라는 것 등 그분이 말한 '일’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개발 경력 차이’보다는 '직장인으로 겪을 수 있는 경험 차이[7]’로부터 나온 결론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후회는 없다. 아마 과거로 돌아간대도 같은 선택을 할 거다.
맺음글
불확실의 끝을 달리던 시기,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에 '지나고 보니 내가 선택한다고 착각하고 사는 거더라고요. 될 일은 어떻게 해서든 되고, 안 될 일은 어찌해도 안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 난 '선택한다는 착각 속’이었고, 다 지난 지금에서야 '이렇게 될 일’임을 깨달은 거겠지. 역시 모든 과정은 지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23년 목표는 얼마나 달성했나요?
올해는 나를 다져가는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가계부도 다시 쓰고, 투자 포트폴리오도 정리하고, 보험도 들고(어린이 보험 막차 타기), 영어 공부, 개발 공부(안드로이드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건강 챙기기가 있다. 영어는 작년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올해는 꼭 꾸준히 해 봐야지! 많은 경험과 사람을 만나는 것에 집중했던 작년이라면 올해는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가꿀지 정리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가계부도 다시 쓰고, 포트폴리오 정리하면서 증권사 연금 저축 계좌로 옮기는 것까지 완료했고, 보험도 성공! 영어 공부는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고, 개발 공부…는 하긴 했는데 만족스럽진 못했다. 건강은 못 지킴. 올해만큼 자주, 많이 아팠던 해가 있었나 싶다. 2023년은 대충 65점이군요.
2024년엔 23년에 챙기지 못했던 건강 잘 챙겼으면 좋겠고, 노션도 정리하고, 돈도 열심히 모으고, '쓰는 것’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자했으면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이라도, 혹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블로그라도 그냥 '쓰는 행위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하는? 기왕이면 개발 관련 글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괜찮을 듯. 24년엔 12권 이상의 책을 읽었으면 하고, 프롬프트[8]와 좀 더 친해지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에이, 그냥 믿고 가는 거지 뭐. 믿음은 현실이 되니까.
다른 문을 열어 따라 갈 필요는 없어
넌 너의 길로 난 나의 길로 음
하루하루마다 색이 달라진 느낌
밝게 빛이 나는 길을 찾아
I’m on my way 넌 그냥 믿으면 돼
I’m on my way 보이는 그대로야너는 누군가의 Dreams come true
제일 좋은 어느 날의 데자뷰
머물고픈 어딘가의 낯선 뷰
I’ll be far awayThat’s my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Be a writer, 장르로는 판타지
내일 내게 열리는 건 big big 스테이지
So that is who I amLook at me now
어제랑 또 다른 짜릿한 나
두려운 모든 게 설레이게
I’m in sky high, OMG
사소한 건 다 아득해져 와
Look at me now
I’m on fireI’m on my way 넌 그냥 믿으면 돼
I’m on my way 보이는 그대로야
너는 누군가의 Dreams come true
제일 좋은 어느 날의 데자뷰
머물고픈 어딘가의 낯선 뷰
I’ll be far awayThat’s my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Be a writer, 장르로는 판타지
내일 내게 열리는 건 big big 스테이지
So that is who I am어느 깊은 밤 길을 잃어도
차라리 날아올라 그럼 네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거든
1, 2, 3 Fly upI hope you’d be someone’s dreams come true
제일 좋은 어느 날의 데자뷰
머물고픈 어딘가의 낯선 뷰
I’ll be far awayThat’s my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Be a writer, 장르로는 판타지
내일 내게 열리는 건 big big 스테이지
So that is who I am
선언형 UI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혼자만의 생각이면 안 되는데요…! ↩︎
이것저것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이렇게까지 뭐가 안 나오는 상황도 처음이었다. (포괄적인 의미의) 누구에게 물어도 비슷한 답변이 나오던 기묘함. ↩︎
물론 구직자이니 포트폴리오 정리, 서류, 과제, 면접 등 일련의 과정엔 성실히 임했다. ↩︎
진해로 출발한 날 면접 봤단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지만, 대부분 부족할 때가 많다. 자신감이 좀 생겼다 싶을 때마다 큰 실수를 해서 바닥부터 쌓아 올린 게 몇 번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감이 붙을 땐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진다. ↩︎
순서가 다를 뿐 나 또한 같은 일을 겪었으니까. ↩︎
지니와 오래 놀았지만 AI가 너무 발전해서 슬슬 밑천 드러나는 중. ↩︎